보이지 않는 빛

 

세화미술과 큐레이터 : 한승주 

월간미술 2019. 12호 ‘CRITIC’

정정주 작가는 자신이 거주하며 경험했던 특정 공간에 대한 기억, 그 공간을 타고 들어오는 빛, 자신과 타자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는 응시의 시선 등을 주제로 20년 남짓한 시간 자신의 작업세계를 탄탄히 구축해왔다. 이번 갤러리 조선에서 2년 만에 열린 개인전 <보이지 않는 빛>에서 그는 그간 탐구해오던 주제들을 다각도로 펼쳐내며, 공간에 대한 감각을 재편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제목 ‘보이지 않는 빛’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본다는 시각 행위에는 ‘빛’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그 절대적 존재감이 쉽게 망각된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는 빛에 의해 무엇인가를 보고, 그럼으로써 비로서 인지하게 되는 공간에 대한 감각을 재편하도록 유도하였다.  

 

갤러리 B1층의 주인공은 [상무관]이다. 폼보드와 골판지로 만들어진 [상무관]의 모델은 작가가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낸 도시 광주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대 광주시내에서 일어난 민주화 항쟁 현장을 직접 목도한 작가에게 광주라는 도시는 거리 도처에 널린 깨진 유리 조각들과 금남로 주변의 전일빌딩, 전남도청, 상무관 등 상징적 건물들로 인식된다. 작가는 실제 건물을 모형으로 만들고 텅 빈 건물 내부에 소형 카메라를 비치하여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빛을 통해 갤러리 벽면에 맺히도록 하였다. 빌딩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일방적인 시선은 텅 빈 구조물 안에 머물게 되지만, 그 안에서 도리어 반사되어 나오는 바깥의 시선이 갤러리 내부 벽면에 맺히며 일방적으로 발생하던 시선의 권력은 이내 붕괴되고, 그럼으로써 ‘본다'는 것에 대하여 고정적으로 가지고 있던 감각 또한 재편된다. 전시 공간에 관람객이 들어가면서부터 작품과 맺어지는 일방적 시선의 관계가 흐려지고, 작품 내외부의 경계가 느슨해져 작가가 실질적으로 받은 당시의 느낌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편 작가는 최근 3D 애니메이션 영상작업 혹은 스테인리스 등의 재료를 활용한 조형작품으로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상무관] 주변에 설치된 [Morning Sun], [Schauhaus]는 모두 애니메이션 영상작업으로, 건축 공간에 덧입혀진 아름다운 색채가 빛의 흐름을 타고 천천히 이동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또한 갤러리 2층에는 [Façade]라는 제목의 스테인리스, 거울, LED조명으로 제작된 조형물이 벽면에 설치되었으며 그 외에도 [Structure1,2], [Passage]등의 작품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작가가 개인적 경험에서 공간 작업을 시작했으되 주어진 조건에서 빛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다양하게 변용함으로써 감각과 지각의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지각하는 모든 사물과 공간은 빛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내가 인지한 것들이 과연 실재하는지 아닌지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빛의 실체는 오직 환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정주 작가는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빛으로 빚어진 실재에 대한 감각이 전환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일상 속에서 파상적으로 경험하던 공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길 기대하며 그 일방적인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관람자를 시각에 기인한 감각에 의존하는 대신 기억과 감각, 감정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지각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